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합중국 육군범죄수사국 (문단 편집) == 역사 == ||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undersec-army&cid-direcor.jpg|width=100%]]}}} || || '''[[https://www.dvidshub.net/image/7023110/under-secretary-army-visits-cid-hq|2022년]] 회의중인 [[육군부|육군부차관]]과 CID 국장''' || 과거에는 미군도 군사경찰만이 범죄수사를 맡았다. 해군에서 NCIS의 전신인 NIS가 범죄수사를 하긴 했지만 소속이 [[ONI]]이었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NIS의 범죄수사는 방첩 작전으로서의 성격이 강했다. 그러나 [[제1차 세계 대전]]이 발발하고 미군이 대규모 해외 파병에 나서자 육군 수뇌부는 고민에 잠겼는데 해외에서는 국내만큼 군사경찰의 영향력이 크지 않을테니 감시가 소홀해진 틈을 타 파병군이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날뛸 것 같았던 것이다. 실제로 파병군의 군기 유지는 매우 중요한 문제인데 병사 한 명의 범죄 때문에 우방국이 적으로 돌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. 결국 원정군 사령관이었던 [[존 퍼싱]] 장군이 직접 방범과 수사를 전담하는 부서를 군사경찰대 내에 새로 설치하기로 하는데 이게 바로 Criminal Investigation Division, CID이다. 그러나 기존의 군사경찰대 내에 설치한 것이기 때문에 CID는 단일화된 조직이 아니라 이 부대 저 부대 내에 우후죽순으로 설치되었으며 소속 군사경찰부대 군사경찰 지휘관의 통제 아래 놓일 수 밖에 없었다. 1차대전이 끝나고 [[미 육군]]의 규모가 축소되면서 CID 역시 근근히 명맥만 이어가는 신세가 되었다. 그러다 [[제2차 세계 대전]]이 발발하고 미군의 참전이 가시화되자 육군은 부랴부랴 규모를 키웠는데 CID 역시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. 그러나 육군 군사경찰감실은 CID를 불신하여 방산업체 취업자의 [[간첩]] 여부 조사 정도만 맡겼고 현장에서의 육군 장병 범죄수사는 여전히 군사경찰의 몫이었다. 하지만 전쟁이 계속되고 미군이 해외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장병 범죄율은 올라갔지만 군사경찰은 다른 임무들 때문에 수사에 쏟아부을 수 있는 자원이 점점 줄어갔다. 이에 야전 [[지휘관]]들의 개선 요청이 빗발치자 1944년 1월 비로소 CID는 군사경찰감실 직속의 단일 조직이 되었다. 이때 군사경찰의 수사 감독권과 야전부대간 수사 공조 조율권 등이 부여되면서 CID는 육군 범죄수사를 선도하는 [[조직]]으로 떠올랐다. 그러나 학습 효과가 없었는지 육군은 2차대전이 끝나자 CID를 갈기갈기 찢어 군사경찰부대들로 돌려보낸다. 이후 CID는 1차대전 종전 후처럼 찌그러진 채 살다가, 1964년 미군 해외 주둔군의 효율적인 통제를 고심하던 [[미합중국 국방부]]가 CID 조직의 단일화를 결정하면서 극적으로 부활한다. 1965년에는 단일화된 CID의 국내 관할이 확정되었고 이듬해 유럽과 극동에서도 CID 개편이 이루어졌다. 물론 보수적인 군의 특성상 새 체계가 완전히 자리를 잡은 건 몇 년 뒤인 1969년으로 이때 육군수사청(Army Criminal Investigation Agency)이 창설되어 전세계의 CID 조직들을 감독하게 된다. 거기에 1971년 멜빈 레어드(Melvin Laird) 국방장관이 '감독권으로 되겠냐? 지휘권도 줘라'라고 [[육군부]]에 지시하면서 육군수사청은 9월 17일 육군범죄수사사령부로 승격되었고, 세계 각국에 흩어진 CID 조직을 흡수하면서 오늘날의 모습이 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